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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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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6 재키 로빈슨

#6 재키 로빈슨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다시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100년이 훨씬 넘은 미국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한 선수의 이야기로 만나보겠습니다.

그 전에 영구 결번의 의미를 혹시 아시나요? 영구 결번은 스포츠 팀 등에서 특정 선수를 기리기 위해 그 선수가 사용하던 등 번호를 사용하지 않도록 지정하고 또 따르는 관습입니다. 물론 아무나 영구 결번 선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은퇴 후 해당 팀에 큰 기여를 한 소수의 선수들만이 영구 결번의 대상자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동원 선수의 11번이나, 이종범 선수의 7번 외 많은 ‘전설’같은 선수들이 있습니다. 보통 영구 결번은 선수가 현역 시절 뛰던 팀 내에서만 해당됩니다. 그런데 여기 메이저리그(MLB) 30개팀 전체에서 그가 사용하던 42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야구 선수가 있습니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인 이 선수의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메이저리그(MLB): 미국의 프로 야구 리그. 메이저로 진출한 많은 한국 선수들 덕에 이미 익숙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수의 이름은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입니다. 재키는 어려서부터 여러 스포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 중 야구에서도 큰 재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들어가기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흑인’ 이었고, 그 때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흑인선수는 없었습니다. 그 대신 재키는 흑인들만의 리그였던 니그로 리그에서 뛰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브루클린 다저스(現 LA 다저스)의 대표였던 ‘리키’에게서 메이저리그 입단을 제의를 받습니다. 이때 리키가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차별과 멸시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물었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받아도 맞서지 않을 흑인 선수가 필요하다.” 재키는 제의를 받아들였고 최초의 흑인선수로 메이저리그에 입단하게 됩니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 직후 인종차별 또한 극에 달했던 시대, (야구장으로 들어가는 문도 백인과 흑인 용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재키는 예상 했던 대로 입단과 동시에 상상할 수 없는 차별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같은 팀 동료에게서도, 특히 다른 팀 감독들에게서 심한 욕을 먹었고, 호텔 투숙을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밑과 같은 살인협박 편지도 수차례나 받았습니다.

 

Robinson, We are going to kill you if you attempt to enter a ball game at Closely field

로빈슨, 네가 만약 Crosely field에서 경기를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너를 죽일 거야.

 

1947년 4월 15일 처음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던 날에는 재키가 타석에 들어서자 모든 관중이 욕을 하며,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키는 온갖 차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묵묵히 활동합니다. 데뷔 첫 해에는 당당히 신인상도 거머쥐는데, 이는 객관적인 성적만으로 당당히 이룬 결과였습니다. (타율 0.297 도루 29개) 이후에도 최우수 선수로도 뽑히며 활약합니다. 이러한 재키의 활약은 점차 백인사람들의 생각도 바꾸어 나가며 백인 들도 그를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재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름은 명예의 전당에도 당당히 올려지게 됩니다. 미국에 흑인들에게는 ‘영웅’ 같은 존재로 그들에게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MLB 명예의 전당: 미국 야구박물관에 있는 큰 업적을 남긴 감독이나 선수들을 기억, 기념하기 위해 만든 기념관입니다. 헌액 조건이 까다롭기도 하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려지는 건 당연 모든 선수들의 꿈일 것입니다.

 

혼자 타석에 들어서서 외롭게 인종차별에 맞서 외로이 싸웠고 승리했던 재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메이저리그에서는 그의 등 번호 42번을 ‘모든 팀’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42번을 달고 뛰는 선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또, 2004년부터는 재키가 첫 경기를 가졌던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했습니다. 그 후 매년 재키 로빈슨 데이가 돌아오면 그 날 메이저리그 전 구단의 선수를 포함한 코칭스태프들 모두 다 42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며 재키 로빈슨의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재키 로빈슨의 업적을 기리는 것일지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재키 로빈슨은 단순히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 야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기도 하고,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재키는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 제정에도 영향을 끼쳤고, 은퇴 이후에는 흑인 인권 운동가로서 활동들을 했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야구선수가 아닌 인종차별의 벽을 허무는데 앞장 선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또, 만약 재키가 없었다면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인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었을까요? 시대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레 누구에게나 열린 메이저리그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지만 선두주자였던 재키가 없었더라면 다른 외국인 선수들은 ‘기회’도 받지 못한 채 아직까지도 아마 미국인에게만 열린 리그로만 성장했을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그의 업적을 기억해주고 있는 메이저리그와 팀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 칼럼도 기대해주세요!

 

 

글=수완뉴스 장서영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장서영 칼럼리스트
장서영 칼럼리스트
장서영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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