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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November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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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column신라 : 13대 미추 이사금, 3번째 시조

신라 : 13대 미추 이사금, 3번째 시조

김 미추, 첨해 이사금이 급사한 후 대신들의 추대로 즉위하였다.
김알지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구도 갈문왕, 어머니는 지마왕의 손녀 박씨이다.
아버지 구도는 딸을 골정 태자에게 시집보냈고, 골정의 아들 조분이 왕위에 오르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조분왕은 자신의 외삼촌인 미추를 둘째 사위로 삼았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참 정신없는 개족보이지만, 당시에는 나름 합리적인 관행이었을 것이다.

탈해왕이 박씨의 사위자격으로 왕위에 오른 것처럼, 미추왕은 석씨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를 이은 모양새인데, 뭐가 어찌 되었건 드디어 김씨 왕이 탄생하였다.

261년 왕위에 올랐는데, 선왕의 사위도 아니고 석씨도 아니었기에 반발이 심했는지 즉위하자마자 용이 연못에서 나타나고 금성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뭔가 소요 사태가 있었나본데, 그래도 조기에 수습하고 열심히 국정을 살피고 민생을 보듬었다

즉위 이듬해에 국조묘에 제사 지내었고,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으로 봉하여 정통성을 세웠다.
민생의 어려움을 생각하여 궁실을 증축하지 못하게 하였고, 농사에 방해가 되는 짓들을 금했으며,
억울한 놈들은 풀어주고, 배고픈 자들은 먹이고, 남당에서 형벌의 잘, 잘못을 의논하게 하는 등 자애로운 정치를 하였다.

이 양반 치세에는  유난히 백제의 침입이 많았는데, 민생을 생각해서 그랬는지 공격은 하지 않고 방어만 하였다 .
제위 5년, 백제의 봉산성 공격은 성주 직선이 물리쳤고
11년의 침입도 기록은 없으나 막았을 것이다 .
17년 괴곡성 침입은 정원이 막았고
22년의 침략은 양질이 막았다.
재위 23 년에 졸하였는데 비록 데릴사위 격의 왕이었으나, 민생의 어려움을 보살핀 성군이었다.

김씨의 초대 왕답게 전설이 좀 있는데,
다음 대 유례왕 시절, 청도 근처의 이서고국과 싸우는데 신라가 고전하자, 
투구에 댓잎을 단 병사들이 갑자기 나타나 적을 무찔렀는데,
승리한 후 보니, 그 병사들은 온데간데없고, 미추왕릉 주변에 수만 개의 대나무 잎들이 쌓여 있더라 …는 수호신 전설이 있고.
역시 수호신이 된 김유신이 미추왕릉을 찾아와서 자기와 자기 자손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는 전설도 있다.

미추왕의 다음 대는 다시 석씨로 이어져, 아직 김씨들 만의 세상은 아니었지만,
그의 자애로운 정치는 후대에 김씨가 왕위를 독점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딸들은 내물왕과 실성왕의 아내가 되었다는데,
이 두 사람과 미추왕의 나이 차이는 백살이 넘는다.
이게 가능할 리 없으므로, 미추왕은 가공의 인물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김경순
김경순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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