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호
인종의 3째 아들로서, 위로 형이 둘씩이나 있었으므로 옥좌와는 좀 거리가 있는 신분이었으나,
사람 팔자는 알 수가 없어서,
둘째 형 대량후가 큰 형에 의해 일찌감치 무력화 되었고,
1170년 무신 정변으로, 놀기 좋아하던 큰 형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나이 40에 느닷없이 왕좌에 앉혀졌다.
무신 정변은 어떤 고상한 이념이나 포기할 수 없는 가치 따위를 수호하기 위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우발적으로 시작되어 기존 질서의 무차별적 파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혁명 주체들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 되었는데,
기르던 개에게 뒤꿈치를 물린 꼴이 된 의종은 성격대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정중부를 암살하려고 하는 등,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배은망덕한 놈들에게 철퇴를 내리고 왕권을 되찾으려고 하였으므로,
혁명주체들은 지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의종을 폐위하고 신왕을 옹립하는 수밖에 없었다.
권력을 내려놓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무신들에 의해 방패막이로 고용된 얼굴마담에 불과하였으므로,
이러한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명종은 단 한 번도 실권을 탐내지 않았고, 주인이 누구로 바뀌든 그에게 순응하였다.
덕분에 대궐 밖에서는 피가 강이 되어 흐르는 참극이 되풀이 되었어도,
때늦은 사랑타령과 손자들의 재롱 속에 세월을 보낼 수 있었고, 고희를 넘겨서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
말년에 최충헌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창락궁에 유폐된 뒤에도,
형 의종과 달리 환경에 쉽게 적응하였는지,
그 상태로 오년을 더 살다가 1202년 이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 27년간의 재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