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완뉴스=박정우 칼럼니스트] 우연히 집 앞에 놀이터를 가본 적이 있다. 집 앞 놀이터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지어졌으니 최소 20년 이상의 연식이 있는 오래된 놀이터이다. 놀이터에 갔을 때, 자주 인사드리던 이웃에 A 할머니는, “옛날에는 아이들 노는 모습을 이 놀이터에서 자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요즘은 아무도 없구먼”이라고 내게 말씀을 하셨다. 실제로 옛날과 비교해보면 놀이터에서 노는 아동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왜 그런걸까? 이번 달 칼럼은 아동의 놀 권리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1989년 11월 UN총회에서 아동의 생존·발달·보호·참여에 관한 기본 권리를 명시한 협약인 유엔 아동권리협약(이하 협약)이 만장일치로 채택돼 한국(1991년 가입)과 북한을 포함하여 세계 193개국이 비준했다. 이 협약은 아동을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닌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보고 이들의 생존, 발달, 보호, 참여에 관한 기본 권리를 명시한 협약이다.
또한 협약은 18세 미만 아동의 생명권, 의사표시권, 고문 및 형벌 금지, 불법 해외 이송 및 성적 학대 금지 등 각종 ‘아동기본권’의 보장을 규정하고 있으며, 협약 가입국은 이를 위해 최대한의 입법, 사법, 행정적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협약이 정한 의무에 따라 가입국 정부는 가입 뒤 2년 안에, 그 뒤 5년마다 아동 인권 상황에 대한 국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그 국가보고서를 심의해 아동 인권 보장의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해당국 정부와 함께 모색한다. 따라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한국에서 아동들의 인권 보장 및 권익 증진에 중요한 법적 근거 중 하나가 되어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협약의 내용 중 아동의 놀 권리와 관련된 조항은 제31조인 “모든 아동은 적절한 휴식과 여가 생활을 즐기며, 문화 예술 활동에 참여할 귄리를 가진다.”이다. 즉, 모든 아동은 누구나 적절한 휴식과 여가생활을 즐길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러한 부분이 한국 사회에서는 소외된 것은 아닌가 한국 사회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
협약에 따르면 아동의 나이를 만18세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아동이 고3까지에 해당한다. 사실상 한국은 입시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아동들은 어린 시절부터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한 입시경쟁에 의해 많은 시간과 금전적 소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아동의 가정환경, 경제적 상황, 아동이 사는 지역 간의 격차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존재하다보니 한국에서 아동들은 놀 시간도 없고, 놀 만한 환경이 마땅치 않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최근 이와 관련되서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유니세프를 통한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동에게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사업들을 하겠다고 보면 대부분 형식적이거나, 기존의 사업을 아동친화도시 기본 계획서에 명시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그만큼 지방자치단체의 아동 정책은 형식적이고 아동의 니즈에 맞는 아동에 의한, 아동을 위한 정책이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아동들이 체감하는 아동 정책의 효용성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낮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나마 아동 정책의 큰 변화가 느껴지고 있는 곳이 서울특별시이다. 예를 들어, 작년 12월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권수정 시의원(정의당, 비례대표)이 대표 발의한 「서울특별시 아동의 놀이권 보장을 위한 조례안」(이하 조례)이 제정됐다. 이 조례안은 총 15개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동의 ‘놀이권’ 등의 정의, △놀이권 보장에 관한 시장의 책무, △놀이권 보장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ㆍ시행, △놀이권 보장 관련 실태조사 등이 규정되어 있다.
이 조례의 내용을 참조할 때, 조례는 아동의 놀 권리를 서울특별시에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체계를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조례가 그동안의 형식적인 서울특별시의 아동친화도시 추진을 비롯한 아동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또한 필자는 아동의 놀 권리는 단지 아동의 권리가 아닌 아동의 의무라고도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동이 편안하게 휴식하고,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는 단지 아동을 돕는 수준을 넘어 아동이 기본적인 인간으로서 살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아동의 놀 권리와 관련된 조례를 제정한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서 “서울시가 아동친화도시를 선포하고 아동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놀이정책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며 그마저도 놀이터나 놀이시설에 대한 고민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조례에 행정적ㆍ재정적 지원 근거를 마련하여 이를 토대로 서울시가 아동의 놀 권리 증진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아동들의 놀이 시간 및 물리적 공간 부족 문제와 아동의 놀 권리 관련 법령 및 정책 대부분이 놀이시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실제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동의 놀 권리 보장 및 증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앞으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많게 하려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의 놀 권리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 아동의 놀이 시간 및 공간의 확보와 질적 개선, 놀이 지원 전담 기구 및 인력 구성, 아동친화도시 추진 과정에서 아동의 놀 권리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 등을 촉구한다.
박정우 칼럼니스트(법제처 국민법제관, 사회문화법제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