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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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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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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 2대 무왕, 위대한 정복군주

대 무예, 고왕의 장남으로 719년 즉위하였다. 고구려의 대무신왕과 비슷한 역할을 한 정복 군주로서, 즉위 후 세력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하여 옛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을 회복하였다.유목의 땅에서 영토 확장은 성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부족을 복속시키고 약탈하는 것이...

발해 : 시조 고왕

대 조영.발해의 창업군주로서, 우리 역사에 고구려, 고조선을 제공하고 만주를 영원한 정신적 영토로 만들어 준,고마운 민족의 영웅이나, 그 흔한 탄생설화는 고사하고 출신조차 모호한 신비의 인물이다. 중국 기록에는 발해말갈, 속말말갈, 고구려 별종 등으로 되어 있고, 삼국유사에는...

발해 : 시작, 우리 역사?

고구려의 뒤를 이어 만주 지역에 군림했었다는데,관련 기록이 부실하고,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아, 마치 전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그 성립이나 성장 과정, 그리고 신라와의 관계 등을 보면,우리 민족과의 연계는 좀 약하고 그렇다고 아주 남은 아닌 것 같고,과연...

태봉 : 궁예(2), 난세의 화려한 불꽃

민초들이 편한 시대는 별로 없지만, 난세는 민초들을 더욱 힘들게 하여,자신과 가족을 지킬 힘이 부족한 이들은 도둑에게 빼앗기고, 다시 도둑이 되어 빼앗았다. 그 과정이 수월할 리는 없고, 결국 굶어죽거나 칼 맞아 죽는 것이 대다수 민초들의 운명이었는데,이러한...

태봉(후고구려, 마진) : 궁예(1), 사나운 중

헌안왕 또는 경문왕의 서자이고 장보고의 외손자로서, 출생 시 무지개를 닮은 흰 빛이 지붕 위에 있었고, 날 때부터 이가 있어,불길하다 하여 죽임을 당할 뻔했으나, 다행히 유모가 데리고 탈출하여 목숨을 구하였는데,이때 유모의 손가락에 찔려 애꾸가 되었다고...

후백제 : 견훤(2), 난세라는 꿈

난세. 사람 사는 세상이 언제인들 난세가 아니겠냐마는, 우리 역사에서 전국시대를 의미하는 난세는 흔치 않다. 삼국 초창기를 제외하면 후삼국시대가 유일할 것이다. 견훤은 이 난세를 온몸으로 살아간 진정한 호걸이자 영웅이었다.견훤이 몸을 일으킨 진성여왕 시기는 신라의 모순이 극대화되어,...

후백제 : 견훤(1), 난세를 열고 닫다

867년(경문왕 7년)에 태어났다.당시는 자연재해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는 시기였으나, 아버지가 부농이었기에,계모와 그 자식들에게 구박은 좀 받았어도 배는 곯지 않았는지, 체격이 남달리 컸다고 한다.젊은 견훤은 능력 있고 반항적인 젊은이답게, 찌질하게 집안 재산을 놓고 동생들과 툭탁거리는...

신라 : 56대 경순왕, 신라의 종말

김 부 피살된 경애왕과는 6촌간으로 이찬 효종의 아들이고 헌강왕의 외손자이다. 견훤에 의해 임명되긴 하였으나, 어쨌든 김씨이므로 박씨에게 넘어갔던 왕통을 되찾은 의미가 있다.이러한 까닭에, 경애왕 시기 김씨 중심의 진골귀족들이, 친 고려파인 박씨 왕에 대항하여 친...

신라 : 55대 경애왕

박 위응, 신덕왕의 둘째 아들로서,상대등을 지냈고, 경명왕 사후 조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형의 뒤를 이었다. 조카들이 8형제나 되었으므로 맏이는 제법 나이를 먹었을 것이니, 섭정을 몇 년하고 친정을 하게 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신라 : 54대 경명왕

박 승영, 신덕왕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917년 왕위에 올랐으나,  나라꼴은 박씨들이 다스리던 초기 신라 시절보다도 못하였다. 대야성이 버텨주고 있었기에 나라를 유지하고는 있었으나, 왕명은 경주 인근에만 겨우 미칠 뿐이었고, 재정은 매우 궁핍하였으며 병력도 보잘 것...

신라 : 53대 신덕왕, 박씨 왕조의 부활

박 경휘, 아들이 없었다는 아달라 이사금의 직계 후손이라 한다. 모계일 것이다. 헌강왕의 사위였으므로 효공왕의 자형이고, 여동생이 효공왕의 비였으므로 효공왕의 처남이 되기도 한다.효공왕은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고, 선왕의 처남이자 자형의 신분이므로 왕위를 물려받지 못할 것은...

신라 : 52대 효공왕

김 요, 헌강왕의 서자이다. 일찍이 헌강왕이 사냥 길에서 한 자색이 빼어난 여자를 만났는데, 그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 발생하였고, 그 결과 헌강왕의 유일한 아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사통의 결과이므로 헌강왕은 본부인의 눈치를 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