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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column고려 : 무신들의 시대, 개막

고려 : 무신들의 시대, 개막

무신정변의 세 주역 중 하나인 정중부는 인종 때 군적에 올랐다는 것으로 보아 귀족과는 거리가 먼
신분이었던 듯한데,
풍채가 비범하여 금군에 발탁되었다고 한다.
그는 풍채뿐만 아니라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었는지,
장교가 된 후에 그 유명한 수염사건의 여파로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김부식과 원한을 맺었어도,
인종의 비호를 받아 무사할 수 있었고,
초기에 문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의종도 정중부를 신임하여,
고과점수가 썩 높지 않은 그를 강화된 친위군의 수장으로 만들었으며 상장군까지 시켜주었다.
이렇게 두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60대 중반까지 살았으므로, 
자기 인생에 별 불만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뿌리 깊은 무신 천대의 전통은 그를 정변의 지도자로 내몰았다,

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왕과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괴로워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올라 탄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수 없었던 정중부는 의종을 폐위시켜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명종을 즉위시킨 후 문하평장까지 고속 승진한 그는 이의방, 이 고와 함께 벽상공신으로 추대되어,
공신각에 초상이 걸리는 광영까지 맛보았으나,
실권은 이 고, 이의방 등의 젊은 과격파에게 있었으므로 또 하나의 얼굴마담에 불과한 처지였다.

막부 정치가 본격화한 명종 초기, 정권의 주도권을 쥔 사람은 이 고였다.
그는 무신 정변을 실질적으로 기획, 실행한 인물로서, 주저하는 정중부를 끌어들여 명목상의 지도자로 추대하였으며,
보현원에서 문신들을 가장 많이 살육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추진력 덕분인지 그는 무신정변의 3공신 중에서 추종자을 가장 많이 거느렸다고 하는데,
능력보다 간이 더 컸는지 아예 왕조를 바꾸고자 하였다.

왕은 자기가 하겠다고 대놓고 주장하지야 않았겠으나,
세를 모으다 보면 의도가 새어나갈 수밖에 없었고, 적과 동지를 떠나 그에 대한 반감이 심하였는데,
특히 구 체제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대장군 한 신 등의 노장군들은 더 크게 분노하여,
이 근본도 모르는 놈을 단매에 때려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노익장을 과시해 보기도 전에 발각되었고, 이 고의 동지 이 의방에게 제거되고 말았다.

중방에 앉아 미주알 고주알 잔소리를 늘어놓던 노인네들은 이렇게 제거되었으나,
이 고가 꿈을 이루려면 최대의 협력자이자 경쟁자인 이의방이라는 산을 넘어야 했는데,
이의방의 능력 또한 이 고 못지 않았으므로 정면대결 보다는 암살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믿었던 동지 채 원은 이 고보다는 이의방과 더 친했던지 이 치명적인 정보를 누설하였고,
열받은 이의방은 궁문을 나서는 이 고를 쇠몽둥이로 때려죽여 버렸다.

개막전의 주인공 이 고는 이렇게 허무하게 유명을 달리하였으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달리기 시작하였고, 우리 역사상 희귀한 막부정치의 시대가 활짝열렸다.

김경순
김경순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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