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파사
이름이 뭔가 이국적인이지만, 이두식 표기이므로 원 발음은 아닐 것이고,
박씨도 양주동 박사의 해석에 따르면 밝다의 의미를 지니므로,
‘밝은 푸른 수염’이나 ‘늑대와 춤을’처럼 인디언식 이름이 아니었을까?
뭐가 되었건 도로 박씨가 임금님이 된 것으로 보아,
탈해 이사금이 아들이 없었거나, 석씨들의 입지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원래는 형인 일성이 즉위할 예정이었는데, 뭔 공작을 했는지 형을 제끼고 왕위를 차지하였다.
왕비가 김씨인 것으로 보아 김알지 세력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즉위 이듬해에 시조묘에 제사 지냈고, 민생을 살피고 농잠을 장려하였으며,
군비를 확충하고 체제를 정비하였다 .
안동 지방의 고타군주가 푸른 소를 바치는 등 알아서 기었고.
재위 6년엔 백제의 변경 침입을 막았으며,
재위 15년과 17년에는 가야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하였고,
18년엔 보복까지 기획하였다.
22년에 월성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이듬해 경주 인근의 음즙벌국, 삼척지역의 실직곡국, 압독국 등의 항복을 받았고
25년에 실직곡국의 반란을 토벌하고 그 무리를 남쪽으로 옮겼다 .
26년엔 백제와 화친했고, 가야를 공격했으며
29년, 주변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했다.
재위 33년 만인 112년 10월에 서거하였다 .
마치 고구려의 대무신왕을 보는 듯하다.
주변의 소국들을 마구 쓸어버렸고 삼척과 대구 지방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본격적이지는 않았겠으나 어쨌든 강국 백제의 공격도 막아 내었고, 가야와는 제대로 치고받았다.
나름 업적이 많은 정복 군주였다 .